현대도시를 산책하는 렌즈
19세기 시인 보들레르는 근대적 예술가의 초상을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가((flaneur))’에서 발견하였다. 당시 파리는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 경제적 변화와 오스망의 도시 재구획에 의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화려해진 파리의 거리풍경에 매혹된 동시에 어두운 뒷골목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체감한 보들레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선을 던지는 동시에 파괴된 도시의 모습을 비참한 어조로 노래하며 ‘현대생활의 역설’을 이야기했다. 최초의 모더니스트로 일컬어지는 보들레르가 발견한 ‘현대성’은 이처럼 복잡다단한 도시의 모습에서 이끌어 낸 양가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
사진작가 방병상은 오늘날 이 땅의 도시를 배회하는 산책가다.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대신 ‘사진’에 도시풍경을 담아 내는 것이 영락없이 보들레르가 말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그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도심의 거리, 터미널, 지하철역, 극장, 고궁, 수영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도시 근대화의 고유한 흔적이 발견된다. 서양에 비해 갑작스럽게 뒤늦은 근대화가 이루어진 우리 나라 도시 곳곳에 산재한 아이러니컬한 풍경을 방병상은 잘도 포착해 낸다. 그렇다면 그의 사진은 풍경사진인가? 잠시 머뭇거릴 필요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도시풍경을 찍은 그의 사진 중 사람이 없는 것은 단 한 장도 없다. 아니 처음 그의 사진을 대했을 때 시선은 오히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동작과 표정의 인간 군상에 먼저 꽂힌다. 방병상 사진의 주인공은 ‘도시’도 ‘사람’도 아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자 ‘사람들이 사는 도시’인 셈이다.
처음 방병상이 도시풍경을 찍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심의 거리를 배경으로 여성 신체의 일부분을 포착하는 다소 감각적인 〈레드 로드(Red Road)〉시리즈가 그것이다. 여자가 입은 옷의 일정한 패턴과 절단된 신체의 부분을 통해 익명의 여성이 가진 섹슈얼리티와 시각적 조형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기 위해 35mm 카메라로 속도감 있게 촬영했고, 모호하게 번지는 이미지를 위해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었다. 본격적으로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꽃무늬 의상을 입은 여성의 신체 일부분을 〈레드 로드〉와 같은 방식으로 포착한 스냅사진 〈플라워(Flowers)〉 시리즈다. 그러나 이때까지 방병상의 도시풍경 사진은 얼굴이 가려진 익명의 인물과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장소에 의해 도시의 막연한 분위기만을 풍긴다.
방병상의 본격적인 도시풍경 사진의 출발이자 정수는 단연코 〈낯선 도시를 걷다〉 시리즈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도심의 여러 공간에서 만나는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의 모습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한순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도 생생할 뿐 아니라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그곳은 우리가 오늘 아침에도 지나왔을 법한 장소다. 그러나 매우 사실적인 이 사진들은 일면 연극적이다. 그의 이전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을 포착한 스냅사진이지만, 〈낯선 도시를 걷다〉 시리즈가 연출사진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 공간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적 공간에서는 타인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인간의 사회적 습성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물질적이고 도회적인 도시의 모습과 그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대비를 이루거나 극도로 현대적인 건물과 그 주변에 남아 있는 낡은 건물이 상충되는 등 우리 나라 근대화의 단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방병상의 도시풍경 사진의 진수는 은연중에 드러내는 이러한 사회학적 징후에 있을 지 모르겠다.
〈낯선 도시를 걷다〉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불일치가 불러오는 소격효과다. 〈반포동, 공룡의 눈〉과 같이 구체적 지명과 짤막한 텍스트로 된 작품 제목은 그 자체로 새로울 뿐 아니라, 사진 이미지와 대조해 보면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그런 신선함을 준다. 예를 들어 극장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고 있는 남녀를 찍은 사진이 그 제목은 엉뚱하게도 극장 건물에 비친 햇빛을 가리키는 〈종로3가, 삼각형의 빛〉인 식이다. 제목을 통해 중심 이미지와 주변 이미지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음 사진을 볼 때 인식하는 중심 이미지를 설명하거나 압축하는 일반적 의미의 제목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주변 이미지를 지칭하는 제목은 일종의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제공한다. 친근하게 다가왔던 일상의 장면이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생경하게 느껴지는 그런 낯섦 말이다. 그야말로 ‘익숙한 도시’가 ‘낯선 도시’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
최근 방병상의 도시풍경 사진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아 진화하고 있다. 〈낯선 도시를 걷다〉의 다양한 도시공간들은 ‘여가공간’으로 국한되고, 공간과 인물 중 공간에 무게가 실린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최근작 〈녹색 천국 속으로(In the Green Heaven)〉 시리즈는 도시의 여가공간과 그곳에 운집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여의도 둔치수영장, 한강시민공원 등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여가를 향유하고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사 자연공간과 그곳에 모인 다양한 제스처와 표정의 인간 군상이 프레임 안에 포착된다. 그러나 주변에 즐비한 무채색의 고층빌딩과 고가도로, 유난히 두드러진 잿빛 하늘로 인해 ‘녹색 천국’의 ‘그린(Green)’은 ‘그레이(Grey)’로 인식되며 아이러니가 증폭된다.
방병상의 도시풍경 사진은 6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매우 집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의 도시사진은 여성신체와 패턴으로 조형적 요소를 강조한 감각적인 것에서 인간의 유형과 사회학적 성찰을 담은 함축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화려한 서울 거리만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뒤에 가려진 사회의 모순적 문제를 건드릴 줄 아는, 보들레르가 말한 이상적 현대 예술가의 모습이 되어 가는 것이다. 과정이 간단하고 현실적인 도시 이미지에 맞는 컬러사진을 고수해 온 그가 요즘 조심스럽게 자연을 담은 흑백사진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방병상은 최근 새롭게 등장한 일군의 젊은 사진작가 대열에서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가 앞으로도 주위의 칭찬과 질책에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