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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과 지각의 상대성에 관한 섬세한 고찰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사실을 확인하려고 든다면, 이미지들은 죽어 버릴 것이다. 언제나 상상함이 삶보다 더 풍요로운 법이다.”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저서 『공간의 시학』(1957)에서 사람들이 시를 읽고 느끼는 저마다 다른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하면서 예술에 대한 심미적 체험이나 상상력이 각자의 삶과 본질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궁 안에 있을 때 형성된 무의식 속의 이미지가 상상력의 근원이 된다고 보고, 자궁과 유사한 집, 서랍, 상자, 장롱, 조개껍질 등 내밀한 공간들에 대해 탐구한다. 재미 한인작가 천성림(Seong Chun, 1966- )은 사람들이 모든 현상에 대해 저마다 상대적인 지각과 감수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공간과 장소에 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작품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바슐라르를 떠올리게 한다(실제로 그녀는 작품에서 『공간의 시학』의 텍스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천성림의 주된 작업방식은 종이를 얇게 잘라 그것을 실처럼 사용하여 뜨개질 기법으로 평면과 입체를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 볼 때 형태와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작품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올 한 올 엮어놓은 그 직조법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얇은 종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작은 글씨들이다. 그녀는 종이에 텍스트를 인쇄해 얇게 자른 후 그것을 코바늘로 뜨개질하듯 엮어나간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은 물론 엄청난 노동력과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을 여성성이 돋보이는 공예적인 작업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바로 이 텍스트 때문이다.
사실상 천성림의 모든 작업은 그녀를 둘러싼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LA로 이민 간 후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시 뉴욕으로 이주한 그녀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과거에 자신이 속해 있던 공간과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을 작품에 충실히 반영해 오고 있다. 처음 지금의 뜨개질 작업(crocheted work)을 시작한 계기 역시 그녀의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0년대 초반 뉴욕에 온 그녀는 상대적으로 넓은 작업공간이 확보되었던 미 서부 지역에서와 달리 협소한 공간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뉴욕의 현실에서 책상에 앉아 많은 책을 읽고 메모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그러던 중 낱장의 종이들을 뜯어내고 남은 노트의 끝부분을 반복해서 접어나가다가 지금의 작업을 생각해냈다. 어린 시절 미국에 다니러 온 이모가 가르쳐 주었던 뜨개질이 떠올랐고 실 대신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 온 수많은 텍스트들이 거기에 자연스럽게 삽입되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축적된 그녀의 사유와 상상력은 텍스트와 함께 작품 안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이렇듯 텍스트는 그녀의 작업에서 조형적 요소이기 이전에 그녀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추동 하는 사유의 흔적이며 수많은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텍스트를 이용한 천성림의 종이 뜨개질 작업 가운데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모티프로 한 연작들은 뛰어난 조형성과 함께 공간에 대한 고찰을 보다 직접적으로 미술사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 근저에 많은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도 가장 기본적인 색과 단순한 형태로써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몬드리안은 회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가장 존경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자 자신의 작업과 여러 지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기본색과 수직, 수평을 이루는 검은 선이라는 몬드리안의 원초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그 비례와 구성을 변형시키고, 재료와 제작방식을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성림의 작품이 몬드리안을 차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고유하게 변형시키는 지점은 몬드리안 회화 안에 몬드리안 회화에 관한 텍스트를 삽입한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몬드리안의 회화에는 단순한 색과 형태로 회화적 요소를 환원한 만큼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많은 설명과 주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절대 그림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으며 언제나 그림 뒤에 따라다닐 뿐이다. 이러한 추상회화의 역설은 천성림에게 몬드리안을 차용하는 이유가 되고 그녀의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그녀는 몬드리안이 직접 쓴 글과 미술사학자 이브 알랭 부아(Yve Alain Bois)가 몬드리안에 관해 기술한 『모델로서의 회화(Painting as Model)』 중 자신에게 의미있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텍스트를 프린트 한 종이와 색지를 뜨개질 기법으로 엮어 몬드리안의 회화를 변형시킨다. 이렇게 제작된 그녀의 새로운 추상회화(사실상 회화가 아닌)에는 - 얼키설키 짜여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없지만 - 몬드리안에게서는 불가능했던 글과 그림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회화적 이미지를 구성함에 있어서 텍스트를 삽입함으로써 몬드리안의 순수한 조형성을 흐리는 동시에 몬드리안 본인의 서술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이론가의 해석과 그 둘에 대한 작가 본인의 생각을 첨가함으로써 텍스트의 내용에서 또한 순도를 흐린다. 이러한 시도는 몬드리안, 이브 알랭 부아, 작가 자신, 나아가 개별 감상자들 사이를 잇는 것으로서 각기 다른 그들의 공간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개념성과 노동력, 이차원(평면)과 삼차원(입체), 그리기와 만들기 등 동시에 공존하기 힘든 요소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녀만의 고유한 특징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라는 일상의 재료는 명상에 가까운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일정한 부피를 가진 예술작품이 되고, 그것은 기법상 공예적이지만 내용상 풍부한 지시물(reference)을 가지고 있는바 개념적이다. 그녀의 작품에 확정된 것이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상대성과 모호함이야말로 그녀의 작품에서 변하지 않는 핵심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Site(perception)>이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제목에 쓰인 ‘site’와 ‘perception’이라는 단어의 알파벳 14글자를 각각 다른 색의 종이로 뜨개질하여 입체 형태로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천정에 설치한 이 작품은 그녀가 생각하는 한복의 색동저고리 색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실제 한복의 색과 일치하지 않으며, 한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복의 색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도 그들이 속한 환경이나 개인의 지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바슐라르의 말처럼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에서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 글 또한 그 상자 속 내용물을 짐작하는 한 가지 시각일 뿐,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기대와 생각으로 그 상자를 풀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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